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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주절주절

굿바이, 오거나이저

Jaeyeon Baek 2020. 5. 11. 19:03

2018년 10월쯤부터 2020년 5월까지 퍼블릭 클라우드의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 활동을 해왔다. 공식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클라우드 운영사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보는 등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약 1년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을 돌이켜보며 미래의 나를 위해 추억하고 정리해 본다. 두서없이 작성한 글이라 누군가 불편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로 소속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피했다. 

일단 퍼블릭 클라우드의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라고 하면 클라우드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술 스터디, 콘퍼런스 등을 주최 함으로써 이쪽 생태계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이 있지만 핵심가치는 생태계 기여이다. 그리고 댓가가 없는 활동이다 보니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 필수로 탑재되어야 한다.

# 오거나이저, 좋은 경험

- 오거나이저는 클라우드사에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본사에 등록되어 관리되니 소속감이 생긴다. ( 어떤 권위를 차지 했다거나 커뮤니티의 평등을 넘어섰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 자리가 좋았다는 것이니 절대 오해는 하지 말자 )
- 소속감을 통해 각양각색의 다른 오거나이저와 유대관계 형성이 용이하며 눈치껏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 오거나이저라는 특수성으로 행사에서 여러 사람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 되었고 덕분에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 IT 행사 이면의 전반적인 것들을 알게 되어 행사를 가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10배 더 즐길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 클라우드 운영사의 다양한 행사에 초대 되었다. 파트너사만 초대되는 AI 관련 행사가 있었는데 초대되어 신났던 경험, 행사에 패널로 초대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절주절 떠들어 본 경험. 모든 게 오거나이저 활동이 아니었으면 내게 오지 않았을 기회들이다.
- 수천명 규모가 모이는 행사에서 AI 데모 부스를 운영해 본 경험은 아찔할 정도의 추억이 되었다. 비록 늦은 시간에 자리를 해서 찾아오는 사람은 적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AI 데모 부스를 운영해 보겠냐는 제안을 덜컥 수락했던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 오거나이저, 좋지 않았던 경험

- 세상에 안 좋은 경험은 없다. 어떤 의미로든 경험은 모두 좋은 것이다.
- 여러번 적었다 지웠다 반복하며 고민한 끝에 좋지 않았던 점은 적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글은 내 추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글이니 좋은 것만 남기자. 남겨봤자 훗날 누군가에게 상처만 될 뿐이다.
- 대신 왜 오거나이저를 그만두는 결심을 했는지 이야기해본다. 참고로 한번 오거나이저는 크게(!) 이변(사고)이 없는 한 본인 의지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다.

# 그만두기로 결심

- 커뮤니티를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자리다. 커뮤니티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충만해야 하고 무언가 진행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과 상관없이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만 나는 홀로 상당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지도.
- 위와 이어지는 내용인데 주기적으로 행사를 통해 생태계에 기여해야 하는 입장인데 내 경우에는 본업을 제외하고 여유 시간을 쉽게 내지 못해서 행사를 주최하는 게 어려웠다. 이건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과 별개다. 나는 소속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 오거나이저라는 신분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행사든 뭐든 하긴 해야 하는 데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았으니. 결국 핑계다. 누구는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하겠나.
- 그래서 2019년 가을부터 약 6개월 이상 이런 부분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고 커뮤니티 매니저(오거나이저를 관리하는)와도 이야기를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갔지만 코로나 여파로 오프라인 행사는 더욱 힘들어지고 온라인 행사는 내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분야였던 것 같다. 목표를 잡고 시도했으나 발표자 수급이 힘들었고 나 혼자의 노력으로는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결국은 다 핑계지만.
- 커뮤니티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다른 파트의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했다. 어쩌면 내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더 간절히 바라는 자리일 수 있는데 꿰차고 앉아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게 다 핑계로 시작해서 핑계로 끝난다. 결국 핑계 대는 게 싫어서 그만두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 주절주절

올해 봄은 내게 유독 쌀쌀맞았다.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는 가장 큰 혜택인 샌프란시스코 행사에 갈 수 있는 초대장과 항공사 티켓까지 내 손에 쥐어졌지만 코로나(COVID-19)가 터졌다. 코로나가 한국에 퍼지고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할 때도 샌프란시스코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제발 미국에서 입국 금지만 시키지 말아 다오"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쓰는 글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섰다. 점점 사태가 심각해지더니 결국 행사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렇게 나의 미국행은 좌절되었지만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한 달간 무척 즐거웠다. 소박하지만 내 꿈은 금문교가 바라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여유 있게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이다. 올해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 해 더 달릴 수 있었을까? 적당히 일 년 더 오거나이저 활동을 하면 어쩌면 내년에 다시 기회가 생기겠지만 스스로 받는 스트레스는 내 꿈의 크기보다 컸다.

처음 오거나이저 제안을 받은 날의 벅차오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이 모이는 행사의 중심에서 내 목소리를 내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라도 설레 일 것이다. 오거나이저 등록을 위한 설문 작성을 하던 퇴근길 버스 안에서 느꼈던 행복한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나오면서 벅차오름과 내가 좋아하는 일은 다를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행사를 주최하는 것보다 발표에서 더 큰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그동안 행사를 주최하고 그 안에서 발표도 했었고 비록 오거나이저 활동은 그만두지만 발표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을 듯하다. 이것도 나름 개발 생태계에 기여라면 기여인데 오거나이저와는 미묘하게 다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글까지 정리하게 되니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게 실감이 난다. 후련하다. 그동안 아낌없이 후원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매니저 분들과 오거나이저 멤버들 그리고 행사를 빛내주신 봉사자&발표자 모든 분들께 온몸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겠냐만은 다른 곳에서 또 유쾌하게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자리는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대신하기를 바라며 이제 그만 일반 사용자(유저)로 돌아간다. 그리고 내 본업과 직결되는 기술 블로그를 휘갈기는 일과 (기회가 되면) 발표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태계에 기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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