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트 근무 회고

우한 폐렴이 2020년 구정부터 세계적으로 난리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종교집단이 바이러스를 퍼 날라 온 나라를 바이러스 공포에 몰아넣었다. 한국을 입국 불가 국가로 지정한 나라도 생기는 걸 보면 확실히 이번 바이러스의 영향력이 실감된다. 이미 몇 백 원 하던 마스크는 열 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고 생필품 사재기까지 부분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 19의 전염성은 지난 사스나 메르스보다 강력하다. 미세먼지가 극성이던 지난겨울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행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90% 이상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듯하다.

 

각설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서 SK, 카카오, 쿠팡 등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스타트업까지 많은 기업들이 근무 형태를 재택근무로 돌리고 있으며 본인이 현재 재직하고 있는 회사도 이번 사태로 인해 리모트 근무가 허용이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리모트 근무지만 워낙 워커홀릭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번 글에서는 리모트 근무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리모트 근무에 적응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

 

- 집에서 회사와 동일한 모델의 LG 32 인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

- 회사는 15인치 맥북프로, 집은 13인치 맥북프로. 화면은 약간 작지만 맥북 어차피 회사 메신저인 슬랙만 띄워놓고 있어서 불편함이 없다.

- 회사에서 별도의 키보드 없이 맥북 키보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질감도 없다. 맥북과 모니터의 배치조차 회사와 집이 동일하다.

- 요즘 스프링 프레임워크로 덕업 일치를 하고 있어서 퇴근 후에도 일을 종종 하고 있었다. => 회사와 집이 동일한 개발 환경으로 세팅되어 있다.

- 회사 PC에만 존재하는 데이터는 없다. 대부분 Google Drive에 spreadsheet, presentation으로 작성되어 있고 개인적인 메모는 에버노트를 통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상관 없다.

- 회사의 전체 시스템이 구글 제품( Gsuite, GCP )을 사용하고 있어서 구글 캘린더로 동료들의 스케줄을 확인하거나 행아웃 meet을 통한 화상회의는 너무도 익숙하다. 또한 서비스 인프라가 클라우드(GCP) 위에 존재하는 것은 업무 공간에 대한 재약을 크게 없애준다. 다음 내용과 이어진다.

- 개발을 위한 어플라이언스 장비가 필요 없다. 첫 직장에서는 방화벽을 개발했는데 작게는 모뎀 정도의 크기, 크게는 얕은 사과박스 정도 크기의 물리적인 장비에 커널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패치하고 테스트해야 했다. 제품이 옆에 없으면 사실상 근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개발하는 시스템은 모바일 앱으로 물리적인 장비가 필요 없다. 굳이 찾자면 핸드폰 정도? 이 조차도 대부분 postman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라 최종 검수가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듯이 재택근무 적응에 문제는 일체 없었고, 다음으로는 리모트 근무의 장단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텐데 장점과 단점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다. 어느 날은 장점이었던 것이 단점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단점이었던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을 보면서 각자에게는 어떻게 와 닿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 pros

 

- 출, 퇴근 시간이 상당히 절약된다. 출근시간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도착까지 평균 2시간 정도 소비하고 있었는데 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이득. 눈 뜨면 화장실 들렸다가 커피 한잔 들고 방으로 출근한다.

- 요즘 같은 시기가 아니더라도 대중교통을 출퇴근은 상당히 피로하다. 빈자리에 앉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하루의 컨디션이 바뀔 정도다. 더욱이 대중교통 안에서 감기 등 바이러스에 여지없이 노출되고 여러 가지 불쾌지수를 얻게 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 따끔거릴 정도의 미세먼지라던지 비라도 오는 날이면...

- 일하는 공간 주변으로 환경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집중도가 훨씬 올라간다. 회사의 경우 자리 주변의 작은 움직임이나 대화 소리에도 집중이 흐트러질 때가 있는데 집에서는 그런 상황이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는 앞사람의 기침소리, 옆 사람의 하품소리 같은 생리현상, 택배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회사 방문, 경영기획실의 사무실 점검 등등. 알게 모르게 우리는 주변에 많은 움직임으로부터 신경을 빼앗기고 있다.

- 불필요한 회의나 대화가 적어진다. 사소한 대화가 관계에 도움이 되고 그게 곧 업무로 이어져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평소 같으면 회의에서 잡담도 더 있을 법 한데 리모트에서는 서로의 시간을 더 존중하게 된다.

-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예를 들면 점심식사도 함께 할 수 있고 가사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도 있다. 휴게 시간을 이용해서 설거지나 빨래 정리 등 가벼운 집안일이 가능하다. 출퇴근할 때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게 되니, 가족 간의 대화가 많이 부족해지는데 리모트 근무는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서 가정의 평화를 챙길 수 있게 된다.

 

 

# cons

 

- 한 시간 걸리던 출근 시간이 붕 뜨면서 잉여로운 시간이 없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던지, 명상하며 생각을 정리한다던지 했을 텐데 이런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

- 아이의 간섭을 이겨내야 한다. "아빠는 지금 일을 해야 해"와 같은 대화가 통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유년기 아이의 고집이 문제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은 아이의 성향에 따라서도 많이 갈린다고 할 수 있다.

- 워라벨( work and life balance ) 붕괴가 찾아오고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집이 주는 편안함, 혹은 안락함이 조금은 줄어든다. 이건 개인 성향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어차피 일을 하는 공간이 서재와 같이 독립된 공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거실, 안방 등이라면 일하는 공간, 쉬는 공간의 분리가 없기 때문에 곤란해질 수 있겠다.

여유는 사무실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 휴식 타이밍이 애매하다. 회사 같으면 사무실을 휘적휘적 거닌다거나 휴게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집에서는 언제 메신저 대화가 시작될지 모르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긴장하게 된다. 결국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진다.

-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압박감이다. 이건 관리자를 만족, 혹은 설득시킬 수 있는 열쇠인데 사무실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회사에서는 눈치껏 "오늘은 여유롭네" 하며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 리모트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더 나은 실적을 보여야 하는 압박이 무언에 자리 잡고 있다. 회사에서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옥죄는 스타일이라 평소에도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지만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애써야 했다.

 

 

# 더 나은 재택근무를 위해서 신경 써야 하는 것들 

 

직장에 처음 출근하면 OT를 통해 이메일 예절이나 문화를 배우게 되는데 리모트 근무를 위해서도 배워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사실 사무실에서도 당연히 신경 써야 하는 것들 이지만 오프라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다. 

 

- 충분한 전달력을 가진 완성된 문장을 신경써야 한다. 사무실에서는 어휘력이 떨어지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된다. 하지만 채팅을 통해서 의미를 전달할 때는 띄어쓰기 하나, 혹은 마침표 하나에도 서로 예민해지거나 뜻이 와전되기도 한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정확한 문장이 상호 전달되어야겠다.

- 본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메신저에 표시는 필수이다. 깜빡하고 상태를 *업무 중*으로 놔두고 퇴근한다고? 출퇴근 시간을 기록해야 하는 회사에서 퇴근할 때 지문을 찍지 않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다. 출퇴근이 엄격한 곳이라면 분명 돌아가서 퇴근을 찍을 것이다. 리모트라고 해서 이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또한 사무실에서 자리를 비울 때 근처에 있는 동료에게 내 상태를 알리는 것은 회사생활의 기본적인 예의이다. 리모트 근무에서 동료들이 나를 볼 수 없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프라인에서 지키던 예절 그대로 온라인에서도 지켜야 리모트 문화가 정착된다.

- 메신저 딥-다이브. 생각보다 우리는 메신저에 얕은 기능만 쓰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상대편이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 급하면 자리로 찾아가서라도 대화가 가능하다. 주변에는 더러 집중을 위해 메신저를 모니터 구석으로 치워놓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리모트 근무에서는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내 상태가 *업무 중*이라면 멘션(@)되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채널에 너무 많은 대화로 인해 피곤할 수 있지만 이미 슬랙은 내가 필요한 메시지만 받을 수 있도록 잘 배려가 되어 있다. 이런 숨은 기능들을 찾아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

 

 

회사 메신저에는 늦게 반응하지만 개인 메신저에는 기가 막히게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사무실 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사람은 평생 줍지 않는다. 같은 조직에 속해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은 아니라는 뜻이다. 리모트 근무도 마찬가지. 어차피 모든 사람이 관리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사무실에서 속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 마무리

 

여러 기업에서 직원들이 보다 편안한 리모트 근무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회의에서 오가는 대화의 양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만큼 문서화 방식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히도록 노력하고, 메신저의 상태 표시를 통해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회사가 배려해주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해보면 리모트 근무를 "복지"나 "혜택"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에 갇히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근무 환경을 위해 사무실 공간 배치를 신경 쓰거나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는 것처럼, 리모트 근무도 결국은 하나의 근무 환경일 뿐이다. 사무실 공간 배치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는 않듯이 리모트 근무도 모두에게 혜택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벌이 될 수도 있다. 관리자와 직원의 신뢰뿐만 아니라 직원 서로 간에도 탄탄한 신뢰가 있어야 리모트 근무가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서로를 지켜볼 수 없으니 컴포넌트처럼 정확하게 나뉘어 있는 일감으로 내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데 관리자 입장에서 이 일을 나누는 기준도 애매하고. 하긴 이건 사무실에 출근해도 마찬가지 기는 하지만 "똥도 회사에서 돈 받으면서 싸라"는 말처럼 회사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면 마치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이 사회가 가장 큰 문제다. 아무튼 조직의 성숙도가 리모트 근무를 단순한 근무 환경으로 만들지, 복지로 만들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덜 성숙한 입장에서야 요즘 같은 시국에 재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최고의 복지겠지. "우리 회사 복지 구경하세요" 해놓고 맥북프로, 점심식대 제공, 간식 무제한, 눈치 보지 않는 연차. 이런 교과서 내용 같이 복붙해온 복지 말고 말이다.

 

아무튼, 내 경우에 리모트 근무를 해보니 그동안 회사에서 얼마나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됐다. 나름 업무시간에 집중도 잘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잘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 퍼포먼스의 75% 정도의 느낌이다. 지금은 90% 정도? 이 정도 차이는 결국 야근으로 이어지느냐 마느냐의 기로쯤으로 생각된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지 궁금하고 리모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취합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외에 어떤 장, 단점이 있을까.

 

그건 그렇고 퇴근이 없는 이 느낌은... 아직 나도 리모트 근무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나보다. 하하하

 

 

---

[] 재택과 리모트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했는데 위에서는 모두 재택으로 생각하고 읽어주셔도 됩니다.

[] 마무리를 휘갈기고 보니 두서가 없네요. 힘든 시기지만 모두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